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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발달심리학/기초와 이해

대상 영속성(Object Permanence) - 아이의 인지 발달 과정(까꿍 놀이의 원리)

by 소우아 2026. 3. 5.

'대상 영속성'의 마법과 발달 가이드 - 눈앞에서 사라져도 존재한다.

 

 

어린아기와 함께 '까꿍 놀이'를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부모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나타나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을 본 듯 자지러지게 웃습니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가려진 얼굴'이 아이에게는 왜 그토록 큰 충격과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바로 '대상 영속성(Object Permanence)'에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의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이 마법 같은 인지 능력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대상 영속성이란 무엇인가?


대상 영속성이란 물체가 눈앞에서 보이지 않거나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그 물체가 어딘가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지 발달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영유아가 세상을 배우는 첫 번째 단계인 '감각운동기(Sensorimotor Stage)'의 핵심 과업으로 이 능력을 꼽았습니다. 

 

대상 영속성이 생기기 전의 아기에게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인 공간입니다.

 

엄마가 방 밖으로 나가면 엄마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영영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능력이 발달한다는 것은 아이의 머릿속에 '정신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며, 이는 곧 기억력과 상상력, 그리고 추론 능력의 시초가 됩니다.

 

 

 

2. 피아제가 관찰한 대상 영속성 발달의 6단계


피아제는 자신의 세 자녀를 직접 관찰하며 대상 영속성이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후 약 2년에 걸쳐 6단계를 통해 서서히 발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1단계 (생후 0~1개월) : 반사기
이 시기의 아기는 반사적으로 움직입니다. 눈앞의 물체가 사라져도 전혀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 2단계 (생후 1~4개월) : 1차 순환반응
물체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되면 금방 관심을 돌립니다. "사라진 것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 3단계 (생후 4~8개월) : 2차 순환반응
이제 아이는 부분적으로 가려진 물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형의 발이 담요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면 담요를 들치고 인형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완전히 가려지면 더 이상 찾지 않습니다.

 

 - 4단계 (생후 8~12개월): 2차 순환반응의 협응 (중요한 전환점)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대상 영속성이 나타납니다. 완전히 가려진 물체도 찾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A-not-B 오류'라는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 A-not-B 오류 : 장난감을 항상 장소 A(왼쪽 주머니)에 숨기다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장소 B(오른쪽 주머니)로 옮겨 숨겨도 아이는 여전히 장소 A에서 장난감을 찾으려 합니다. 이는 아이의 대상 영속성이 아직 '자신의 행동'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5단계 (생후 12~18개월) : 3차 순환반응
아이는 이제 눈앞에서 이동하는 물체의 궤적을 쫓을 수 있습니다. A-not-B 오류가 사라지고, 물체가 마지막으로 숨겨진 장소에서 물건을 찾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동(손안에 숨겨서 몰래 옮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 6단계 (생후 18~24개월) : 내적 표상
드디어 완전한 대상 영속성이 형성됩니다. 이제 아이는 눈앞에서 직접 이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도, 물체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여 찾을 수 있습니다. 상상력이 가능해지는 시기이며, 이는 곧 상징 놀이(소꿉놀이 등)로 이어집니다.

 

 

대상 영속성 발달 단계 도표(피아제의 감각운동기 6단계)

 

 

 

 

 

3. 대상 영속성과 '분리 불안'의 기묘한 상관 관계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인지 능력이 발달할수록 부모님들의 고충은 커질 수 있습니다.

바로 '분리 불안' 때문입니다.

 

대상 영속성이 생기기 전에는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아이는 당황하거나 울지만, 금방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상 영속성이 생기기 시작하는 생후 8개월 무렵부터 아이는 "엄마가 내 눈엔 안 보이지만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공포를 자극합니다.


"엄마가 지금 옆방에 있지만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거야!"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아이는 더 격렬하게 울고 매달리게 됩니다. 즉, 껌딱지가 된 우리 아이는 사실 '똑똑해지고 있는 중'인 셈입니다.

 

 

 

4. 대상 영속성 발달을 돕는 단계별 놀이법


부모와의 즐거운 놀이는 아이의 인지 발달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분리 불안을 완화하는 최고의 약입니다.

 

 * 초기 (4~8개월) : 까꿍 놀이 (Peek-a-boo)
   단순히 얼굴을 가렸다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모의 얼굴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아이는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습니다.

 

 * 중기 (8~12개월) : 보물찾기 놀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수건이나 이불 밑에 완전히 숨기고 "우리 인형 어디 갔지?"라고 물어보세요. 아이가 스스로 이불을 걷어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세요.

 

 * 후기 (12~24개월) : 컵 속에 숨기기
   불투명한 컵 세 개를 준비하고 그중 하나에 공을 숨긴 뒤 컵의 위치를 바꿔보세요. 아이가 끝까지 공의 위치를 추적하며 집중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 정서적 놀이 : "잠깐만" 연습
   아이가 보는 앞에서 화장실에 가거나 옆방으로 이동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세요. "엄마 지금 거실에 있어~ 금방 갈게!"라는 목소리는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엄마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훌륭한 신호가 됩니다.

 

 

 

5. 결론 :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대상 영속성의 획득은 단순히 장난감을 찾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아이가 세상을 논리적으로 구조화하고, 타인과의 안정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심리적 기초가 됩니다.

 

아이가 자꾸만 물건을 던져서 떨어뜨리는 것도, 엄마가 화장실만 가도 자지러지게 우는 것모두 이 대상 영속성을 확인하고 연습하는 과정입니다.

 

부모님들은 이 시기 아이의 유난스러운 행동을 '고집'이나 '의존'으로 보지 마시고,

"우리 아이의 뇌 속에 세상을 담는 그릇이 만들어지고 있구나"라고 대견하게 여겨주세요.


보이지 않는 엄마의 사랑이 늘 곁에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의 뿌리가 바로 이 '대상 영속성'에서 시작됩니다.